프리츠한센의 역사는 나크스코브의 캐비닛 제작자 프리츠한센이 코펜하겐에서 무역 라이선스를 획득한 187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1885년은 프리츠한센이 스스로 가구 생산 회사를 시작한 결정적인 해이고 2년 후에 그는 코펜하겐의 중심부인 크리스티안하운에 작업실을 낼 수 있었습니다. 프리츠와 그의 아들 크리스티앙은 고품질을 추구했고 이는 프리츠한센 제품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회사 설립 후 50년 간 쟁쟁한 수주 목록을 보면 20세기 초에 이미 프리츠한센의 명성이 높았음이 나타납니다. 프리츠한센의 가구가 배치된 건물로는 크리스티안스보르, The University Library, Copenhagen City Hall, The Supreme Court 등이 있습니다.
20세기 초, 프리츠한센의 아들 크리스찬 E. 한센은 진보적인 성향을 바탕으로 스팀 벤딩 비치를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술은 1930년대에 더욱 고도화되었고 따라서 프리츠한센은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 했으며, 해당 기술은 후일 브랜드만의 전문성을 구축했습니다. - 가구는 라미네이트 목재로 생산되었습니다.
깔끔한 라인과 한층 가볍고 실용적인 특성은 독일 기능주의의 변형으로서 스칸디나비아를 대표하는 혁신적인 스타일로 자리잡았습니다. 프리츠한센은 최초로 스틸 소재의 가구를 출시한 덴마크 브랜드였고 여기에 유명한 카레 클린트의 처치 체어가 포함되며 1936년부터 2004년까지 프리츠한센 컬렉션을 유지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프리츠한센 공장은 오히려 확장됐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 탓에 덴마크 월넛나무 중 다수가 병들었습니다. 프리츠한센은 많은 양의 목재를 사서 그러한 상황을 이용했으며 월넛 소재의 새로운 가구 시리즈가 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진취적인 행보는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시기의 첫 번째 클래식 제품은 혁신적인 건축가 한스 J. 베그너가 1944년에 디자인한 차이나 체어입니다. 이 체어는 우드와 고급 가구 제작 기술이 결합하여 탄생한 조각적 제품입니다. 두 번째 클래식은 1945년에 보르게 모겐센이 디자인한 스포크 백 소파이고, 후에 이 제품은 가장 덴마크스러운 소파로 다시 선을 보였습니다.
1950년대에 아르네 야콥센은 프리츠한센에서 매우 활발한 콜라보레이션 활동을 벌였습니다. 1934년 라미네이트 처리된 앤트 체어를 함께 선보이면서 업계에 본격적인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 의자는 시리즈7 체어의 끝나지 않는 성공 스토리로 이어졌고 후발 주자로 베니어 체어가 출시되었습니다. 앤트 컬렉션에 창조적 영감을 준 제품은 흐비트&묄고르의 AX시리즈였고 라미네이션 기술과 분리형 가구의 도입은 아직까지도 프리츠한센 역사의 중요한 순간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아르네 야콥센은 코펜하겐의 SAS 로열 호텔을 위해 에그와 스완이라는 두 가지 클래식 스타일의 제품을 디자인하며 더 큰 성공을 얻게 됩니다. 아르네 야콥센의 시리즈 3300 또한 그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었습니다. 베르너 펜톤 역시 배챌러 체어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아르네 야콥센을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1963년에 Allerød내 공장은 세 개의 공장 홀로 확장되었고 1965년에는 행정부서가 크리스티안하운로부터 알러뢰드 내 개조된 건물(쇼룸 포함)로 이동했습니다.
끝이 없는 민주적인 테이블인 수퍼일렙티컬 테이블과 스팬 레그가 있는 테이블은 브루노 매트슨과 피트 하인에 의해 디자인되어 프리츠한센 제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제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르게 모겐센의 ‘Tremmesofa’와 한스 베그너의 차이나 체어의 재출시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르네 야콥센 모델 또한 이 기간에 높은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프리츠한센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1979년의 첫 근무일에 프리츠한센은 107년의 역사를 가진 이 기업이 더는 가업으로 계승되지 않을 것임을 발표했습니다. 프리츠한센 주식의 75%는 현재 스칸디나비스크 홀딩의 소유입니다.
덴마크 디자인의 총아인 베르너 펜톤은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로 프리츠한센에서 도발적이고 창조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언론에서는 그의 이러한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아르네 야콥센 및 그 외의 클래식 제품으로 귀환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이는 몇 년 후에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막대한 투자와 철저한 재건축 작업을 통해 새로운 소유주인 스칸디나비스크 홀딩은 프리츠한센을 강화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코펜하겐 무역 박람회 및 컨벤션 센터인 벨라 센터에서 열린 1983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선보인 새로운 프리츠한센 모델로만 구성된 전시는 프리츠한센이 다시 한 번 무대에 올라 덴마크의 선도적인 가구 회사의 위치를 탈환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리츠한센은 폴 케홀름이 1951년부터 1980년까지 디자인한 미니멀리즘 컬렉션인 케홀름 컬렉션을 구입했습니다. KEVI 컬렉션과 뮌슈 뫼블러의 구입과 함께 프리츠한센의 판매와 관심도 증가했습니다.
확장은 이 시기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프리츠한센은 현재 런치룸, 컨퍼런스룸, 휴식/대기공간, 사무공간, 사저의 다섯가지 유틸리티 부문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1999년 베싱게뢰드에 새 공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업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이 공장은 스태킹 체어의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현재 "프리츠한센의 유산"을 전시하는 쇼룸과 박물관을 운영 중입니다.
새로운 CEO 야콥 홀름은 1998년에 프리츠한센에 입사하여 기업에 큰 변화를 일으킨 주역으로, 최종 소비자를 세심하게 겨냥함으로써 프리츠한센을 제조 기업에서 판매 및 브랜드 기업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여정을 감행했습니다.
2000년에 컨셉 프리츠한센의 도입은 전략 면에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프리츠한센의 가구는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며 독특한 표현을 만들고자 하는 회사와 사가의 이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00's 또한 새로운 디자이너를 초정하여 현대적인 관점에서 프리츠한센 디자인 철학을 해석했습니다. 캐스퍼 살토가 디자인 한 아이스 시리즈와 리틀 프렌드는 새로운 소재와 다기능적인 디자인을 도입했고 피에로 리소니와 세실리에 만즈의 디자인은 새로운 최종 소비자를 끌어들였습니다.
동시에 이 시기는 회생을 통해 클래식을 시대에 적합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를 테면 2003년에 옥스퍼드 체어의 전반적인 회생이 한 가지 예입니다.
이 컬렉션은 공공 사용 목적 또는 개인 사용까지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계약이나 소매 시장 모두에서 인기를 얻은 제품입니다. 2011년에 스페인 출신의 하이메 아욘과의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되었고 아름답고 조각적인 가구가 탄생했습니다.
2015년은 '식스티 이어스 인 퍼펙트 쉐이프'라는 테마로, 프리츠한센의 상징적인 제품인 시리즈 7 체어의 출시 6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입니다. 프리츠한센은 같은 디자인 철학을 가진 덴마크 조명 회사 라이트 이어스를 인수합니다. 프리츠한센은 라이트 이어스 인수 외에도 2016년에 소품 컬렉션 오브제를 출시합니다. "당신의 삶을 채워 드립니다"라는 태그가 등장하는 오브제 컬렉션은 프리츠한센 브랜드의 연장선이자 아름답고 합리적인 가격의 아이템을 선보이면서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이기도 합니다.